Topic : 이달의 화제

한국 언론 발달사

에디터: 박소정

역사는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창이다. 따라서 다양한 정보와 의견들을 참고하여 사실로서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한 집단에서 나온 의견에 의해 일방적으로 서술된 것은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자서전이나 소설과 다르지 않아 역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역사를 집필할 때 쓰이는 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과 민간이 기록한 것, 즉 ‘언론’에서 나온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500년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리고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언론의 모습이 근대화되기 시작했다. 신문을 빽빽하게 채우던 한문은 한글로 바뀌었고, 세로쓰기는 가로쓰기로 바뀌었다. 정부 아래 신설된 언론 아닌 언론에서 벗어나 정부를 감시하는 민간 신문사가 생겨났다. 차츰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등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뉴스를 접하는 매체와 방식도 다양해졌다. 그 속을 살펴보면 지난 100여 년의 한국의 근·현대사가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거친 투쟁이었듯이, 언론이 걸어온 길 또한 평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언론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외치고, 부패한 정권 교체를 주장하고, 대한민국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부르짖는 현장에 늘 함께 있었다. 물론 언론의 숭고한 비판정신을 잃고 기득권 세력에 편승하여 작문을 써내는 언론 아닌 언론도 존재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5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언론은 얼마나 발전했을까? 국경없는기자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 자유지수는 10년 전에 비해 약 30계단 떨어져 2015년 60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 언론은 현재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언론의 현재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보기 위해 지난 100년간의 한국 언론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일제 강점기, 선전도구가 된 언론
1910년 8월 22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병합조약이 발효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36년 동안 일제 강점기가 시작됐다. 일제는 강제 병합 직전 ‘집회취재법’을 공포함으로써 거의 모든 집회와 단체를 해산시켰다. 애국운동을 하던 단체는 물론이며 친일단체들도 해산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국민은 집회와 결사, 표현의 자유를 모두 박탈당했다. 이후 1919년 3.1독립운동의 함성이 터져 나오며 조선독립신문이 생겨났고, 미국과 만주 등지에서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치는 20여 종의 신문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계기로 일제는 문화정치를 시행했다. 일본이 설립한 통치기구인 통감부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생각으로 합법적 언론을 탄생시켜 더욱 교묘하게 사람들의 사상까지 바꾸려 들었다. 이로 인해 1920년 창간된 신문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다. 동아일보는 친일파의 최대 지주였던 김성수 일가가 사실상 경영주였다. 조선일보를 허가받은 발행인 예종석 또한 ‘대정실업친목회’라는 친일단체의 이사였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지임을 내세우며 3대 주지를 다음과 같이 주창했다. 하나, 조선 민중의 표현 기관임을 자임하노라. 둘,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셋,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 이는 어디까지나 말뿐이었고, 그들의 행동은 언제나 일제의 선전기관으로 앞장섰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로 친일 노선을 걸었는데, 어느 날 미국의원단을 환영하던 시민을 일본 경찰이 탄압한 사건을 비판조의 사설로 싣고, 연이어 배일 선언을 하며 민족지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이 일로 조선일보는 무기 정간을 당했다. 동아일보 또한 일본의 제사문제를 논하는 사설을 한 번 실었다가 정간을 당했다. 이후 동아일보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일제를 찬양하는 논조의 기사들을 낼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 수립되고, 만주에서 독립군의 무장투쟁이 이루어지던 무렵 동아일보에 소설가 이광수가 ‘민족적 경륜’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으며 국민의 분노를 끓게 했다. 여기에는 “조선인은 자주적으로 국가를 경영할 능력이 모자라니 일본에 자치를 청원해 영원히 속국으로 살자”는 주장이 펼쳐져 있었다. 이에 국민들은 격분했고, 조선일보의 진보적 기자들은 동아일보의 사설을 비판하는 글을 써내 ‘사회주의 신문’이라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이도 얼마 가지 못해 사회주의 노선의 조선일보 기자 17명이 집단해고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후 조선일보에 속한 언론인들은 생존을 위해 동아일보와 색을 같이하게 됐다. 이후 두 언론사는 창씨개명에도 앞장섰고 일제의 대변지 역할을 하며 선전집단으로 활동했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1940년 8월 11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폐간사에서까지 일제의 탓을 하기보다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리며 언론의 자존심을 끝까지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후 대한민국은 1940년 8월 12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민족지 없는 암흑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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