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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그리고 생존
The New Gypsies by Iain Mckell

에디터: 지은경, 세바스티안 슈티제 Sebastian Schutyser
사진: 이안 맥켈 © Iain Mckell

상상해보자.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도는 중환자실, 혹은 영화에서처럼 언제 지구로 무사 귀환할지 모르는 극적인 상황에 부닥친 자신을. 이렇게 되면 삶의 목적은 유일해지고 그 무엇보다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오로지 생존. 우리는 삶을 선물로 받은 이상 어떻게든 끝까지 생존해야 한다. 이 삶이라는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오로지 생존하느냐 마느냐 만의 문제인 것이다. 어떤 복잡한 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나 인간들끼리 겪는 감정의 수많은 사연은 생존이라는 단어 앞에서 가차 없이 사그라진다. 생존을 인생의 가장 최고의 목표로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단순한 원리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사회 속에서의 경쟁이나 성공, 약탈, 화려한 명성, 부패한 정치인의 꼴사나운 모습도 아무런 의미를 발휘하지 못한다. 집시들의 삶이 그러해왔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법칙을 정하고 세상이 정한 온갖 잣대의 외부에 자리한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차지하고 살아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방식을 경계한다. 우리 인류는 자신과 다르다는 것, 잘 알지 못한다는 것에 심한 불안감과 경멸의 감정을 드러낸다. 이 또한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오는 감정이 아닐까?

로마
유럽에는 1,200만여 명의 로마Roma가 살고 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아직 이 ‘로마’라는 집단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단지 소수의 사람만이 이들의 역사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로마’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와도, 동유럽의 국가 ‘루마니아’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로마’는 로마 자신들이 명명한 것으로 그 어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실한 답을 하지 못한다. ‘로마’는 개인이 아닌 한 집단을 일컫는 말로 ‘집시’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집시’라는 단어를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어둑한 움막에서 상처 난 얼굴로 유리구슬을 어루만지는 점쟁이의 모습이거나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곡을 연주하고 화려한 색감의 나풀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쉴 새 없이 춤을 추는 모습이다. 그러나 집시에 관한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집시, 더 크게는 ‘로마’라고 불리는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로부터 외면당하고 멸시당했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들로부터 대량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로마’는 자신의 무리를 제외한 외부인들을 신뢰하지도, 또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는다. 로마는 이미 그들만의 큰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들의 정체에 대해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로마’는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영국에서는 로마니칼스Romanichals, 웨일스와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칼레Kalé, 프랑스에서는 마누쉬Manouche, 스페인에서는 기타노Gitano, 독일과 오스트리아, 폴란드, 이탈리아에서는 신티Sinti, 코소보에서는 아샤클리Ashakli, 알바니아에서는 이집시안스Egyptians, 크로아티아에서는 베이야시Beyash, 터키에서는 로만라르Romanlar,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에서는 도마리Domari, 아르메니아에서는 롬Lom이라 불린다. 이는 그들이 정착해 기거하는 땅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명칭 역시 다양한 문화와 종교로부터 파생된 어원을 갖기도 한다.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은 매우 다채롭다. 한곳에 정착한 무리가 있는가 하면 어떤 무리는 아직도 유럽 전역을 옮겨 다닌다. 무고한 집단이 있는가 하면 소매치기와 범죄에 가담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대부분 가톨릭이나 이슬람, 개신교 따위의 종교적 신념을 따른다. 그들의 탄생, 결혼식, 그리고 장례 풍속도 각양각색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매우 다양한 방언들이 있다. 그들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의견 대립이 있지만 그중 가장 신빙성을 갖는 추측은 그들이 1,000년 전에 라자스탄에 있는 인도인의 땅에서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역시 다른 일반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유목민이라 할 수 있다. 단지 그들은 수 세기 동안 다른 땅과 역사의 현장을 목격해온, 그러나 국가를 세우지 않았던 여행자들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나 성서가 있는 것도 아니며 유대인들처럼 약속된 가나안 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이 세계의 혹독한 현실을 견뎌내야 했다. 유동성과 자유, 독립성만이 그들이 가진 유일하고도 중요한 정체성이었다.
로마 그룹은 시장의 틈새에 파고들어 말, 개, 그리고 작은 새와 같은 특정 가축을 유통하는 일을 하며 생활했으며, 그들 중 장인들은 주머니시계를 수리하거나 냄비를 수선한다거나 뒷골목에서 암거래를 하기도 했다. 이곳저곳을 떠도는 집시들에게는 환경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대두하기 훨씬 이전부터 물건들을 재활용하는 기지가 있었으며 지속 가능한 대체치료법, 그리고 약초 등의 지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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