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열망의 건축, 기획자 정다영

에디터: 유대란, 사진 제공: 김종우

건축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주제로 한 ‘아키토피아의 실험’전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다. 건축 전문 큐레이터 정다영이 기획한 전시와 동명의 책은 근대 이래 한국의 시대별 건축적 이상향과 주체가 변모해온 역사를 추적한다. 근대화의 열망을 탑재한 세운상가, 문화 도시의 꿈을 품은 파주, 신중산층의 욕망을 대변하는 판교 등 유토피아적 열망이 투사된 장소들을 탐색하는 사이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현재의 건축적 지형과 풍경을 달리 보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할 아키토피아를 그리는 시작점이 된다.

Chaeg: ‘건축 전문 큐레이터’라는 개념이 새롭습니다. 건축 전문지 『공간』의 기자에서 건축 전문 큐레이터가 되신 계기는 무엇이고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정기용 선생님에 관한 다량의 자료를 기증받았는데 그걸 정리할 전문 인력이 필요하게 됐어요. 또 미술관이 서울관 건립을 준비하던 단계에서 시각예술의 장르적인 확장을 꾀하고 있었는데, 이 두 가지가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져서 합류하게 됐습니다. 건축 전시, 건축 전문 큐레이터라는 개념은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미국의 모마MoMA 같은 곳에서는 분과가 따로 있고, 전 세계적으로 건축 전시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는 상황이에요. 건축 큐레이터는 건축가, 또는 건축물에 담겨 있는 사회, 문화, 정신, 내러티브 같은 것들을 풀어서 대중에게 소통하는 일들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표현이긴 한데 21세기형 미술관을 만들자는 임무의 일환으로 장르의 확장을 도모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큐레이터라는 직명을 갖고 있지만, 제 일을 큐레이팅에 한정 짓지 않고 건축기획을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기자 생활을 할 때도, 그리고 현재도 건축기획의 연장선에 있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Chaeg: ‘건축기획’이 뭔지 부연해주시겠어요?
건축계뿐 아니라 모든 산업이 저성장의 시대로 접어들었어요. 새로운 시장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어요. ‘기대감소의 시대’라고도 표현하죠. 특히 건축은 산업, 도시개발과 연관이 있고, 한국의 경우 1970~80년대의 건설 성장기를 지나 도시는 과밀화가 됐고 건축가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아졌어요. 소위 말하는 설계시장은 축소된 거죠. 반면에 긍정적인 것은 문화시장은 더 넓어졌거든요. 출판이든 전시든 어떤 형태로든. 그렇다 보니 건축보다 건축문화에 시장이 쏠리고 있어요. 여기서 건축과 건축 문화를 매개하는 것이 건축기획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는 건축가’ ‘건축학 개론’ 같은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건축가가 하는 일이 뭔지, 건축이 뭔지 다 알게 됐잖아요. 이런 식으로 건축을 대중에게 소통하고 매개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에디터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Chaeg: 『아키토피아의 실험』은 동명의 전시 도록 겸 출판사에서 출간한 한 권의 독립적인 책입니다. 이렇게 기획하신 의도가 무엇인지요?
보통 미술관에서 도록을 만들면 자체적으로 출판하고 내부적으로 소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는 좀 더 많은 사람이 내용을 접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출판사를 통해서 유통망을 확장하고, 또 전문 편집자와 협업함으로써 결과물에 대한 질을 높이고 싶었습니다. 책으로 만든 이유는 이 전시가 한국 현대 건축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엮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텍스트로 읽힐 여지가 많은 주제라는 판단이 섰어요. 그래서 다양한 에세이들을 엮었고요. 전시는 전시장 공간에 한정되지만, 책을 통해서 주제를 더 확장하고,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Chaeg: 이 책은 건축 분야 내의 여러 관점과 장르의 텍스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필자분들은 어떤 분들이고 책이나 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가요?
전시는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어요. 1부가 1960~70년대 한창 개발 드라이브를 걸었던 국가주도 유토피아 계획이 성행했던 시기, 세운상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2부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공동성의 의지가 발현된 파주와 헤이리 프로젝트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젊은 건축가들이 참여한 판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책은 기본적으로 전시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거기에 더 다양한 사례나 분석이 첨가된 식이에요. 서두에서 이상적 도시에 대한 갈망, 즉 아키토피아를 건축이론가와 도시이론가의 전문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고, 본론에 들어가서는, 세운상가 같은 국가주도의 유토피아 계획을 보여주는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시에서는 세운상가만 다뤘지만, 책에는 여의도 개발계획, 아파트의 사례를 추가로 엮었습니다. 아파트의 경우 중산층의 욕망을 대변하는 유토피아나 다름없었어요. 당시의 주공아파트 배치를 보면 굉장히 이상주의적인 것이 드러나거든요. 그런 면이 박해천 선생의 글에 드러나 있고, 헤이리와 파주 출판도시와 관련해서는 실제로 그 현장에 계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판교에 관한 이야기는 예술가이자 비평가이신 이영준 선생이 미시적으로 섬세하게 짚어주셨고, 박정현 선생은 건축비평가로서 좀 더 큰 역사적 흐름에 따라서 바라본 내용을 담아주셨어요. 마지막에 실린 글은 정지돈 선생이 쓰셨는데,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졌던 것 같아요. 기획하다 보니 서두와 본론은 있는데 말미가 없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고민했어요. 앞에서 건축에 직간접적으로 발을 걸치고 계신 분들을 모셨다면 인문학자나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마무리를 지으면 어떨까 했어요. 그러다가 정지돈 선생의 소설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떠올렸고 사적인 자기만의 언어로 건축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준다면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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