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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고단함을 달래주다
미감 충족 기내식

에디터: 이수진

미식가의 본능을 가진 이라면 세상의 모든 음식에 기본적으로 열린 자세를 취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맛있는 음식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진정한 미식가라면 이국땅 낯선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음식이든 미식가들의 성서라 불리는 미쉐린 가이드의 높은 별점을 받은 요리이든, 미감을 충족해주는 맛과 질이라면 언제든지 인정할 수 있는 겸허한 자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규정된 공간 내에서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기내에서는 어떨까.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어렵고 창문을 열 수 없는 기내에서도 미식가의 미식 본능이 발휘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베테랑이 되기 위해서는 깊이에 더해 너비의 경계를 넓혀야 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진정한 미식가라면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는 법이다.
높은 고도와 낮은 기압, 건조한 실내, 제한된 조리만 가능한 기내 환경 속에서도 미감을 충족시킬 수 있다. 가끔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대체로 여행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기내식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

플로리다에서 하바나? 런던에서 파리?
항공 서비스 중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기내식의 시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금이야 공항이 새로울 것 없는 장소가 되었지만, 20세기 초에는 공항도 비행기도 특별하고 낯설었다. 이제 공항은 세상의 많은 이야기가 얼기설기 교차하는 공간이자 다양한 직업이 모여 있는 일터가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항으로 나온다. 공항은 무엇이든 한 단계 도약하고 싶거나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을 때 혹은 중요한 계약이나 회의를 해야 하거나 일상에서 보기 드문 진귀한 광경을 포착하고 싶을 때면 꼭 한 번 통과해야 하는 공간이다.
20세기 초에 발명된 비행기는 주로 항공 우편을 운반하는 화물기로 사용됐다. 기내식은 1929년 미국의 Pan AMPan America World Airways항공사가 프로펠러 비행기인 포커 비행기에 10명의 승객을 태우고 플로리다 주에서 쿠바의 하바나까지 운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최초로 기내에서 음식을 서비스한 것이다. 여성 승무원이 대부분인 오늘날과는 다르게 당시 음식을 서비스했던 승무원은 남성이었다. 승무원의 성비가 지금과 유사하게 된 건 1930년대 중반부터다.
미국의 Pan AM항공사보다 10년 전에 기내식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1919년 10월 11일 핸들리 페이지 수송의 ‘런던-파리’ 노선에서 판매한 샌드위치가 기내식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1919년의 여객기에는 갤리라고 불리는 기내 조리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구니에 담아 판매하는 형식이었다. 당시 가격은 3실링. 시작이 무엇이 됐든 기내식은 항공기의 진화와 함께 그 종류와 맛이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음식 문화를 담아내다
기내식은 크게 차가운 음식과 따뜻한 음식으로 나뉜다. 초기 기내식은 주로 샌드위치나 빵, 음료수 등의 데우지 않은 차가운 음식을 제공했다. 제트 기종이 개발되면서 장거리 논스톱 운항이 가능해지자 따뜻한 음식이 개발되었다. 아시아 항공사들의 초기 기내식은 미국의 영향으로 대량생산이 쉬운 양식으로 구성되었으나, 자국 승객들의 지역 음식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면서 한식, 중식, 일식 등 자국의 전통 음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은 1970년대부터 불고기와 불갈비 등의 한국 전통 요리를 제공했다. 1980년대 말부터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에 제공된 비빔밥은 1990년대 햇반의 등장으로 이코노미석까지 가능해졌다. 대한항공에 비빔밥이 있다면 아시아나항공에는 쌈밥이 있다. 청정 채소의 쌈밥은 더부룩하기 쉬운 기내 환경에서도 승객의 입맛을 돋웠다.
모든 기내식이 자국의 전통 음식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항공사별 기내식을 살펴보면 전통 음식 외에도 도착지의 음식 문화를 적절히 융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항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며 기내식의 맛을 높이기 위해 미쉐린 가이드 스타 셰프나 최고급 호텔 셰프 등의 요리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을 운영하는 항공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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