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엄청 멍충한 세상에서, 작가 한승재

에디터: 유대란, 사진: 신형덕

버스 단말기에 열쇠를 대면 속살을 드러내는 세상, 척추가 더운 날의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해지는 병에 걸려 누워야 살 수 있는 인류, 달리기에서 뒤처질까봐 시스템의 지옥 속에서 죽어라고 달리는 사람들. 건축가 한승재의 이야기에 나오는 세상은 밑도 끝도 없고 이상하다. 그가 오래전 써놓은 이야기들을 자가 출판해서 팔던 것이 정식 출판돼 나온 『엄청 멍충한』이 그리는 세상이다. 그 세상 속 사람들은 여기 우리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나 야릇한 현상에 휘말리고 만다. 그 속에서 치고 받히는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고도 애달프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이 책을 보여준다면 함께 낄낄대다가 갑작스런 침묵에 빠질 것 같다. 작가 한승재는 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걸까.

Chaeg. 자비로 출판한 책을 동네 서점과 길에서 팔다가 출판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정식 출판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데뷔’라고 해야 할까요? 과정이 궁금합니다.
한승재. 2010년에 6개월 정도에 걸쳐서 쓴 걸 자비를 들여 책으로 만들었어요. 당시 다니던 회사 사람들에게 팔고, 덕수궁 돌담길에서 앉아서 팔고, 홍대 앞 여기저기서도 앉아 있고, 커피숍에서 팔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가 거절당하고 그랬죠. 겨울에는 추워서 판매를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유어마인드 같은 작은 서점에 납품을 했어요. 그게 열린책들 편집주간님의 손에 우연히 들어갔고 이듬해 그분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제가 책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 열린책들이라는 회사는 알고 있었거든요. 골랐을 때 실패할 확률이 적은 출판사라고 알고 있었어요. 회사 건물도 좋아하는 건축가가 지었고. 그래서 연락이 왔을 때 대박이라고 생각했어요.

Chaeg. 등단을 목표로 하신 적은 없나요?
한승재. 등단이란 게 공모전 대상 같은 건가요? 저는 등단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별로 생각 안 해봤어요. 그래서 책을 직접 만들어서 판 거죠. 요즘 같은 시대에 필요한가 싶기도 한 게 어차피 평가를 하는 건 독자잖아요. 평가를 받았다는 사람의 글에서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경우도 있고.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음악도 요즘은 자기가 직접 앨범 내잖아요. 꼭 레이블이나 오디션을 거치지 않아도. 등단만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싫어요. 저희 어머니도 등단한 작가신데 등단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요.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어차피 책 디자인도 직접 할 생각이었고 모든 걸 직접 하면 되니까 남한테 심사를 받아야 할 필요를 못 느낀 것 같아요.

Chaeg. 본업은 건축가잖아요. 건축도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지만 소설을 쓰는 일과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글을 쓰는 취미나 계획을 원래 갖고 계셨던 건가요?
한승재. 그림 그리는 취미는 있는데 글 쓰는 취미 같은 건 없었어요. 글은 그림 그린 걸 설명해준다고 생각하고 썼던 것 같아요. 현대미술을 보면 작품보다 설명이 더 많잖아요. 그런 맥락으로 생각했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걸 일차적으로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걸 말로도 써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책에 나오는 그림도 그렇고. 그걸 글로 자세히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건축은 소설이랑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건축은 하다 보면 창의성이 섞여 들어가는 거지 창작만으로는 안 되는 거 같아요. 건축이 현실적으로 더 신경 써야 될 게 많아요. 갑을 관계 같은. 글 쓰는 게 그런 부분을 해소시켜주는 것 같아요. 회사 다닐 때는 건축가라기보다 회사원이었으니까 글을 쓰면서 그런 부분을 해소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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