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but New: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시선의 가치 ‘한국의 발견’

에디터: 유대란 / 사진: 신형덕

고서점, 풍물시장, 인터넷 중고시장을 기웃거리며 어렵사리 찾아낸 책이 있다.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넘는 물건에 안달하는 모습을 보고 스무 살가량 연상의 지인이 말했다. “요즘 사람들이 오래된 물건을 낭만화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오래된 것에 대한 찬미가 한낱 유행을 넘어서 문화 전반에 걸쳐 소비 행태로 자리잡은 현재의 모습이 탐탁지 않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한창 성행 중인 ‘추억 팔이식’ 장사와 ‘빈티지’ ‘레트로’ 딱지가 붙은 상품들이 난무하는 시대를 바라보는 골동품 딜러의 시선이 고울리 없다. 하지만 세월만이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래되고 상태가 좋은 물건을 찾자면 그것은 일도 아니다. 이 책을 손에 넣고자 발품을 팔았던 이유는 바스러진 종이의 질감도, 고풍스러운 서체도, ‘레트로한 감성’도 아닌, 바로 책에서 발견한 시선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한국이지만 그것을 발굴한 건 고 한창기 선생과 편집장이었던 김형윤 선생의 특별한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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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따돌림과 억누름을 받으면서도 청구도와 대동여지도 그리고 인문지리지 대동지지를 편찬한 이 나라 지리 연구의 외로운 선구자 고산자 김정호 선생에게 바칩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1983년에 발간한 열한 권의 ‘한국의 발견’은 조선시대 말에 30년에 걸쳐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에 대한 헌사로 시작한다. 이 책은 국토에 대한 입체적이고 실용적인 정보를 지도에 담아 물길, 산길, 사람길을 밝히고자 했던 김정호의 열망을 계승한 인문지리지다. 여행 관련 프로그램과 정보, 책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우리에게 인문지리지는 낯선 개념이다.
인문지리지는 말 그대로 사람이 만들어낸 사회, 문화, 역사, 정치, 경제와 그것이 속한 자연과 공간과의 관계를 해석한 책이다. 헌사에서 대동여지도를 ‘인문지리지’라고 한 것은 대동여지도가 한반도의 자연지리만 보여준 데 그치지 않고 역사, 사회, 경제, 공간 구조를 반영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발견』은 근대 최초 인문지리지라는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지역의 모습을 평면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자연환경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환경을 긴 시간과 생활 속에서 다듬어온 삶의 궤적들을 유난히 깊고 자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 깊이와 밀도는 곧잘 지루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기술하는 방식은 마치 그 지역에 앞서 살았던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개성 있고, 흥미진진하고 다분히 문학적이다.

“서울로 불어닥치는 북풍을 은평구는 맨 앞에서 맞는다. 그래서 같은 서울 물이라고 해도 맨 먼저 얼었다가 맨 나중에 녹는 것이 은평구의 물이다. 물이 그렇듯이 땅값, 집값도 맨 먼저 얼어 붙었다가 느릿느릿 맨 나중에 풀린다.”

–『서울』 은평구 편 중

“동풍이거나 서풍이거나 남풍이거나 북풍이거나 서울에 부는 모든 바람은 집집마다에서 내뿜는 연탄 가스와 공장마다에서 내뿜는 열기를 싣고 반드시 남산에 부딪쳤다가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로 올라간 그 바람은 ‘연기 모자’가 되어 다시 좁게는 남산을 넓게는 서울을 덮는다. 그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견디어내며 죽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희생물이 되고 말았으니 남산의 나무들은 기독교의 생각을 빌면, 서울을 몸받아 목숨을 내놓은 어린양이다.”

-『서울』 남산 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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