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 : Art 책 속 이야기 예술

배병우, 빛으로 그리는 시

에디터: 지은경
사진: 배병우 © Bae, Bien—U

사진작가 배병우의 사진 속 나무와 바람, 돌, 물, 하늘은 당장이라도 치솟아 오를 듯한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고요하지만 강하게 휘어잡는다. 그의 사진을 통해 바라본 자연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 같기도 하고, 오랜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아름다운 노인의 얼굴 같기도 하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사진 역사에도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예술가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또 누구를 만나든 사진을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이 거론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대지의 힘을 일깨우는 사진을 찍는 작가는 자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무언가 특별한 철학이 담겨 있을 것만 같다. 그가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시작은 1970년 홍익대 미술대학에 진학한 해였다. 당시 한국의 미술대학에 사진 강의가 처음 등장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사진술을 받아들인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사진작가들이 한국에서 사진학 강의를 시작한 것이다. 고등학교 4년 선배가 서울대 미대를 나와 사진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친했던 그는 배병우에게 니콘F 카메라를 주었고 그의 암실을 사용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사진과의 인연을 시작한 배병우는 마미야 트윈렌즈 카메라를 구입했다. “2차원의 평면 예술, 즉 그림이 있고 3차원으로 넘어가면 조각이 되요. 그리고 3차원에 엄격하게 계산된 구조가 더해지면 그것이 바로 건축이 되는 것이지요. 나는 사진과 그림이 같은 것이라고 봐요. 예술가에게 매개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화가에게는 붓과 물감이겠지만 내게는 빛이 그림을 그리는 도구인 거죠. 어릴 적부터 나는 수채화를 그렸어요. 주로 자연이 그 주제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사진을 찍는 일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리 다른 것이 아니에요. 단지 매개체만이 달라졌을 뿐이죠.” 어느새 소나무는 작가 배병우를 연상시키는 아이콘이 되었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소나무 사진을 찍지만 소나무는 드라마틱한 곡선과 아름다운 분위기를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다. 깊은 숲 속에 자리한 소나무들은 자신의 살아온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서 있다. 안개가 스며든 소나무 숲은 그 신비로운 자태를 더욱 강하게 발산한다. 소나무 향을 가득 머금은 이른 새벽의 촉촉한 공기가 피부에 그대로 와 닿는다. 안개가 가져오는 밝은 배경은 동양화의 느낌을 자아내므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또 그의 사진 속 오름들은 어떠한가. 그가 바라본 오름들은 매우 절제된 곡선으로 흑과 백의 경계를 이루며 리듬 있게 흐르고 있다. 돌멩이들과 안개 속에서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는 물살은 영원의 시간을 감지하게 해준다. 그의 사진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속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대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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