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with Books: 책과 함께 사는 삶

무지로부터 얻는 것,
가이 라라미(Guy Laramee)

에디터: 박소정, 자료제공: JHB Gallery

소비는 욕망을 전제로 한다. 맛있는 음식을 사먹고, 좋은 공연을 관람하고, 여행을 떠나는 등 이 모든 소비 행위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이는 경제적 상황이나 주변 여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정보와 지식의 소비는 그 결을 조금 달리한다. 그 예로 어디에서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많은 정보와 지식을 거의 무료로 얻을 수 있지 않은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앞다투어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들을 있는 힘껏 소비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 했으니 좀 과소비를 한다 해도 이처럼 건전한 소비가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든 이가 있다. 캐나다의 설치미술가 겸 조각가 가이 라라미Guy Laramee는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오래된 백과사전이나 중고책을 깎고 채색하여 산과 바위 등을 사실감 있게 표현한다. 이런 그의 작품은 절경이 풍기는 웅장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하지만 여기서 자연은 소재로 활용됐을 뿐이다. 그는 축적된 지식의 상징인 책을 깎아내는 작업을 통해 우리가 덜 앎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가이 라라미는 30년 가까이 ‘문화의 침식’을 테마로 활동해오며, 작품 전반에 걸쳐 그가 아시아의 선(禪)사상에서 받은 영향을 재해석해놓았다. 더하는 대신 덜어내고, 수동적인 대신 능동적인 행동을 지향한다. 또한 그는 사람에게는 생존하는 능력이 있듯이 생각하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지식에 휩쓸리는 대신 스스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여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쌓아나갈 때 인간의 가치가 실현된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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