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레트로(Retro)

에디터: 유대란, 박소정

볼테르가 말했듯, 역사는 변하지 않지만, 우리가 과거로부터 원하는 것은 변한다. 약 30년 전부터 우리의 일상에 진입하기 시작해서 우리의 인식 속에 큰 자리를 잡게 된 ‘레트로’라는 말, 그리고 ‘복고’라고 분류되는 많은 것들은 현재까지도 범람하고 있다. 어떤 것이 ‘레트로’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어떤 것을 원하는지 보여주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모방일까, 재창조일까?

레트로(retro)
‘레트로’는 한글로 ‘복고(復古)’라고 번역된다. 한자 그대로 풀면, ‘오래된 것을 되돌리다’라는 뜻이다. 오래됐다는 것은, 과거 어느 시점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복고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그것으로 인해 떠올리는 것은, 언어 자체가 가진 광범위한 의미에 비해 그 범주가 매우 협소하다. 예를 들어, 영어권에서 레트로라는 말을 꺼냈을 때, 중세나 고대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복고를 두고 조선 시대나 삼국 시대를 연상하는 사람은 없다. 복고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보다 훨씬 한정적인 시대를 포함하는데, 길게는 한 세기 전부터 짧게는 30년 전 정도의 가까운 과거에 해당하는 시점에서 출발한다.이런 경향은 대중문화가 복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치마폭에 그려진 과거는 한정적이지만 매력적이고, 그로써 그것이 그리는 과거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도 한층 더 상상 가능해지며, 적용하고 재생산하기 용이해진다. 특히 대중문화는 시대별 아이콘을 설정함으로써, 그것을 복고의 대체어로 등극시켰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중반 유행했던 새들슈즈와 테일 핀이 장착된 자동차, 디자이너 찰스와 레이 임즈의 가구, 랜치 하우스 등이 레트로를 대표한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이후부터, 그 이전까지의 한국 대중문화가 축적되고 복고로서 재발견 혹은 재소비할 수 있는 아이콘 및 콘텐츠의 취사 폭이 넓어지며 새롭고 독자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영어권에서 레트로라고 불리는 것들과 결을 같이했다. 레트로는 시각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퍼졌으며, 1970년대의 용어가 현재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까지 앤티크 가구를 주로 소비하던 영국에서는, 앤티크라는 이름을 달기에는 연대가 너무 가깝거나 희소성이 떨어지는 물건들을 내놓고 파는 가게들이 생겼다. 쓰레기와 다름없이 취급되던 이 사물들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표지판, 곰 인형, 새로 페인트칠한 가구 등이 있었다. 이런 사물들이 인기를 얻으며, 1970년대에는 멀지 않은 과거에서 비롯한 사물이나 모티프를 디자인에 차용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1980년대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더 다양한 디자인적 실험이 가능해지고, 레트로함은 디자인의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에 등장한 사이키델릭 서체군은 20세기 초까지 유행했던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았으며, 당대에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레트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렇게 불렸다.

응답하라, 2016 대한민국
복고란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주름치마가 떠오른다. 요즘 번화가에서 마주치는 젊은 층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다. 하지만 ‘복고=주름치마’라는 인식의 시작은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발 앞 선 패션을 지향하던 친구 A가 있었다. 모두 최신 유행을 따라가느라 바빴던 20대 초반, 친구 A는 대뜸 엄마의 장롱 속에서 꺼낸 듯한 1980년대 복장을 하고 나타나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미니스커트와 스키니 진 사이에서 나타난 검은색 골지 목폴라 티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A라인 쪽빛 주름 치마라니,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왜 엄마 옷을 입고 나왔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그녀는 한껏 어깨를 추어올리며 말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거야!”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정치를 왕정으로 복원하자는 데서 ‘복고주의’가 발현되었다면, 우리나라에서 복고는 주로 문화적 영역에서 쓰이고 있다. 최근 ‘복고이즘’으로 불리는 복고주의는 지난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을 시작으로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까지 연속 흥행하며 그 열풍을 더해가고 있다. 무한도전은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를 기획해 1990년대에 빛을 받았던 가수들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하며 순간 시청률을 35.9%까지 찍었다. 다채널 시대 속에 동 시간대 쏟아지는 예능 프로그램을 생각해본다면 이례적인 기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전 국민을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이냐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의 기로 속에서 응팔앓이에 몸을 들썩이게 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경우는 케이블 TV 역대 최고 평균 시청률 19.4%를 기록했다. 광고 및 VOD 수입만 220억을 넘게 벌어들이며 CJ E&M의 최고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복고 열풍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기존의 복고가 소수에 의해, 패션과 같은 표면적 영역에 머물다 반짝하고 사라진 것과는 결이 다르다. 지난해 한 리서치기관에서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49.8%가 복고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10명 중 6명은 앞으로도 복고가 지속할 것으로 판단했다. 복고를 소비하는 방식은 이제 드라마와 영화 등 콘텐츠에서부터 음악, 패션, 식품, 음료, 생활품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해졌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지난날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층이 10~20대로 한정됐었다면, 오늘날 복고 문화를 소비하는 층이 40~50대까지 포함한다”며 복고주의가 마케팅 분야에서도 주요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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