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각자의 리얼리티, 작가 이강훈

에디터: 유대란, 사진: 김종우

300권이 넘는 책의 일러스트레이션과 무수한 매체에 독특한 삽화를 그려온 작가 이강훈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더 친숙한 이름이다.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페인팅을 하고 글도 쓴다. 순수 페인팅 전시를 가졌고 『도쿄 펄프픽션』 『나의 지중해식 인사』를 썼다. 상업과 순수를 오가고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 그에겐 창작이라는 것도 그랬다. 사실과 허구, 개인의 경험과 객관적 현실의 경계를 가르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혼합되어 있는 양상이나 둘이 어느새 이미 하나의 덩어리가 된 ‘리얼리티’를 쓰고 그린다. 본지에 연재한 소설 『파차마마의 은혜로운 저주』의 완결을 맞아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Chaeg: 『파차마마의 은혜로운 저주』 『도쿄 펄프픽션』에는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상황과 요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게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 현실과 환상의 어떤 면에 주목하고 글을 쓰시는지요? 환상이 이야기 속 장치 같은 것인가요?
뻔한 답변이긴 한데, 그림이든 소설이든 창작을 하는 건 기본적으로 현실을 기반으로 허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허구라는 게 거짓말과는 다른 의미인 것 같거든요. 사실이 어떤 재료라면 그 재료를 갖고 가공을 해서 완성된 요리를 만드는 것이랑 비슷한 거죠. 완성된 요리라는 건 원 재료와 다른 형태의 것이잖아요. 하지만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는 변하지 않아요. 그런 게 창작이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요리사의 역할 같은 거죠. 허구랑 현실을 구분하는 건 무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화가 마크 로스코의 『예술가의 리얼리티』라는 책이 있는데 로스코는 굉장히 추상적인 그림을 그렸잖아요. 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하나의 리얼리티로 존재하는 현실인 거죠. 창작자들에게는 각자의 리얼리티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환상이라고 보여지는 것들이 창작자에게는 현실이 될 수 있는 거죠.

Chaeg: 환상도 각자의 현실이다?
말하자면 그렇죠. 제가 좋아하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의 경우에도 넘어가는 장면장면들이 현실적 잣대를 놓고 보면 뜬금없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되는 부분들이 생겨요. 그 맥락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사람에게는 꿈의 영역도 하나의 현실로 파악되는 거죠. 칠레의 푼타레나스라는 도시의 한 박물관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싼사를 봤어요. ‘싼사’라는 거 아시죠? 수축된 머리. 그걸 봤는데 반가웠어요. 그곳에 가기 전에 싼사를 소재로 짧은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어요. 다큐멘터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서 쓴 것이었어요. 박물관에서 다른 사람들한테 싼사에 대한 설명을 해줬어요. 그런데 설명을 하다 보니까 어디까지가 제가 지어낸 이야기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구분이 안 되더라고요. 사실적 정보와 허구가 뒤섞여 그것이 이미 저에게 새로운 리얼리티가 된 거죠. 말하자면 그런 것 같아요. 『파차마마의 은혜로운 저주』 속 이야기들도 저한테는 그런 리얼리티인 거죠. 사실과 진실은 다르잖아요. 저한테는 그것이 진실이 됐다고 봐야겠죠. 어딘가에서 사실이 아닌 것이 다른 데선 진실이 되는.

Chaeg: 『파차마마의 은혜로운 저주』에 라캉의 ‘라멜라’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 대목을 읽고 소설 속 많은 것들이 명료해졌어요. 앞서 얘기한 것들과 상통하기도 하고요.
‘라멜라’는 라캉이 인간을 지배하는 욕망의 실체를 두고 만들어낸 신화적 창조물이에요. 존재하지 않지만 존속하는 기괴한 고집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처음부터 라캉을 갖고 오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이야기를 쓸 때 모티프가 된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자료를 찾다가 ‘라멜라’라는 개념을 접했는데 이야기 속의 ‘체셔 고양이’가 ‘라멜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라는 설명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그렇게 해서 라캉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고 자연스럽게 갖고 오게 된 거죠. 사실 라캉의 저서를 읽어본 적은 없고 관련된 자료만 봤어요. ‘라멜라’가 제가 쓰고자 한 이야기와 정말 묘하게 잘 맞아떨어졌어요. 실제로도 비슷한 경험을 했거든요. 계단을 내려가다가 오른발 다음에 왼발을 디뎌야 하는데, 오른발이 또 나간다든가 그래서 구를 뻔한 경험들. 남극을 여행할 때, 고무 보트를 타고 가는데, 거긴 바다가 영하예요. 빠지면 죽을 수 있는데 보트를 타고 가는 내내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도대체 이런 게 뭘까라는 생각을 자주해요.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죽음 충동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고요. 평소에 갖고 있던 이런 질문이 ‘라멜라’라는 것과 자연스럽게 만나더라고요. 그런데 소설 속에 그런 개념을 날 것 그대로 넣은 것 같아서 아쉬워요. 제 식으로 못 녹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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