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우리 풀꽃의 이름을 찾아서, 저자 이윤옥

에디터: 유대란, 사진: 김종우
장소협찬: KUVASZ

창씨개명은 사람의 이름뿐 아니라 우리 산과 들의 풀, 꽃, 나무에도 적용됐다.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붙는가 하면, 다수의 고유종이 일본인의 이름을 달고 학명으로 등재되었다.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은 일제의 아픔을 겪었던 우리 풀꽃 이름의 속사정을 저서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에서 밝혔다. 식물의 한글 이름이 기록된 『조선식물향명집』을 일일이 조사해서 그 내력을 보여줬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Chaeg: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을 쓰신 계기가 무엇인지요?
누군가 카톡으로 작고 예쁜 꽃 사진을 보내왔어요. 꽃 이름은 모르고 지나갔는데 하루쯤 지나서 또 다른 누군가 ‘개불알꽃’이라고 알려줬어요. 이름을 보자마자 ‘아, 일본말 같다’라는 느낌이 왔어요. 일본어를 전공했고 연구한 지 올해로 37년째예요. 커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모금 마시고 어느 지역의 원두라는 느낌이 오듯 저는 낱말을 들으면 그런 느낌이 와요. 찾아보니까 일본어의 ‘이누노후구리(犬陰囊)’를 그대로 번역한 게 ‘개불알꽃’이더군요. ‘이누’가 개이고 ‘후구리’가 음낭이에요. 사실 이것도 정확한 명칭은 아니에요. 이 작은 꽃의 정확한 이름은 ‘큰개불알꽃’이에요. 그래서 큰 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비꽃보다 작은 꽃이에요. 이 말은 일본어의 ‘오이누노후구리(大犬の陰囊)’에서 왔어요. ‘이렇게 예쁜 꽃인데 이름이 왜 이럴까’ 궁금해져서 자료를 찾다가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됐죠.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의 많은 풀, 꽃, 나무가 이름을 잃고 일본 이름으로 굳어졌어요. 그런 것들의 유래와 흔적을 밝히고 싶었어요. 당장 바꾸지 못해도 이런 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잖아요.
Chaeg: ‘1937년에 우리말로 된 『조선식물향명집』이 나왔죠. 이 책의 의의와 한계를 지적하셨어요.
『조선식물향명집』은 근대 최초의 우리말로 통일된 식물도감이라는 의의가 있지만, 우리의 식물학자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책이에요. 1945년 해방까지는 식물을 독자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었어요. 이 책의 바탕이 되는 건 1922년에 나온 『조선식물명휘』라는 책이에요. 총독부에서 만든 책이에요. 일본은 『조선식물명휘』가 조선식물의 연구를 위해서 쓰인 책이라고 주장했지만, 식민지하에서 이뤄졌던 모든 학문 연구나 조사는 식민지 경영에 쓰일 자료를 만들기 위함이었어요. 여차하면 식물을 약용이나 구황작물로 이용하기 위해서 조사한 거예요. 그걸 바탕으로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 선생이 1937년에 『조선식물향명집』을 썼는데 총독부에서 가만히 안 있었겠죠. 『조선식물명휘』가 있는데 왜 또 책을 만드냐고 간섭을 했겠죠. 그래서 조선인들이 일본어를 잘 몰라서 이 책을 내는 것이라고 하면서 어렵사리 만들어낸 거예요. 그분들이 훌륭한 일을 하셨죠.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직접 다니면서 조사할 수 있었던 건 아니고, 일본어로 된 책을 조선말로 옮긴 거죠. 이때 이 꽃의 이름이 ‘큰개불알꽃’이 된 거예요. 금강초롱이라는 꽃이 있어요. 이름을 들었을 때 초롱처럼 생겼을 거란 느낌이 오죠? 굉장히 예쁜 꽃인데 당시 강원도에서 발견되었어요. 일본인들은 일본에서 온 초대 공사의 이름을 따서 ‘하나부사’라고 이름 붙였고 우리말로 ‘화방초’라고 불렸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어사전에도 ‘화방초’라고 올라 있었죠. 지금은 ‘금강초롱’으로 올라 있고, 옆에 화살표가 있고 ‘화방초’라고 나와요. 이 정도의 변화도 고무적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화방초’라고 불렸던 시기와 유래를 덮고 넘어가는 건 또 문제죠.
식민지가 되기 전에도 조선에는 꽃이 있었어요. 식민지 역사가 없었다면 언젠가 우리의 눈으로 보고 우리의 이름을 붙였을 텐데 말이죠. 금강초롱이 처음부터 ‘금강초롱’이었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Chaeg: 책을 보면 지적하신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이 지은 풀꽃의 이름을 그대로 갖고 왔다는 것 그 자체와 그것을 또 왜곡되게 번역한 경우죠.
등잔풀 아세요? 뭐가 떠오르세요? 등잔 같아야겠죠? 등잔이 있고 받침이 있는 그런 모양이에요. 일본에서는 이걸 ‘등대풀’이라고 해요. ‘도다이구사(トウダイグサ)’라고. 그런데 일본말로 ‘등대’라는 단어는 등잔과 등대, 두 가지를 의미하는 낱말이에요. 우리가 옮기는 과정에서 ‘등대’라고 쓴 거죠.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나 야생화도감에는 ‘등대풀’이라고 올라 있어요. 일본에서 이름 붙인 걸 그대로 옮겨서 쓴 것도 문제지만, 그걸 옮기는 과정에서도 잘못된 게 있다는 거죠. 또 산에 가면 수염이 길게 늘어진 것 같은 풀이 있어요. ‘수염풀’이라고 하면 그림이 그려지죠? 그런데 그 풀의 이름은 ‘산거울’이에요. ‘산거웃’에서 나온 말인데, ‘거웃’이 수염의 고어예요. 그걸 모르고 ‘산거울’이라고 한 거죠. ‘가는잎그늘사초’라고도 불려요. 일본어를 그대로 번역한 거예요. 어렵죠. 차라리 ‘수염풀’ 또는 ‘할배수염풀’이라고 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게 부지기수예요. 낱말이라는 건 듣고 소통해야 하는 건데 그게 잘 안 돼요.
또 다른 문제가 있어요. 한반도 고유종이란 게 있어요. 한반도에만 나는 식물이에요. 이게 해마다 바뀌는데 2011년에는 527종이 있었어요. 그 식물들 학명의 62%에 일본인의 이름이 올라가 있어요. 한국인인 줄 알았는데 호적을 떼어 보니 일본인인 격이죠. 안타깝지만 학명은 바꾸기 굉장히 어렵다고 하네요. 하지만 문화재 같은 경우도 약탈한 것인지, 외교적 선물이었는지 끈질기게 추적해서 반환받기도 하잖아요. 식물의 이름도 재론의 여지가 있거든요. 현재 단계에선 우선 그런 것들에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하고 바꿀 수 있는 건지 타진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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